한경BUSINESS
2026.08.17
인류 역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금융현상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문명이 있는 곳에 금융이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자본주의국가에는 물론이고 사회주의국가에도 그렇습니다. 북한에도 은행이 있고 여신이 있으며 개인들 사이 대부거래도 횡행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금융이 비교적 자유롭게 실현되는 현대 자본주의국가에서 금융 부문이 실물 부문을 압도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를 통해 금융의 힘을 깊이 실감했습니다. 오늘날 전쟁에 수반되는 금융제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러한 금융현상에 대해 관점에 따라 설명방식은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부문(공급자)으로부터 필요한 부문(수요자)으로 돈이 흘러가는 현상으로 볼 것입니다. 법률적으로는 대주(채권자)와 차주(채무자) 사이의 소비대차계약, 투자자와 피투자자 사이의 투자계약, 금융상품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의 매매계약 등과 같이 특정한 거래를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로 나타납니다. 이 자금의 흐름을 시간을 고려해 일정한 규칙에 따라 기록하고자 연구한 결과가 회계학입니다. 종교·신학적 관점에서도 논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금융을 고도화하는 원동력
역사적으로 보면, (i) 대양을 항행하는 원양선(ocean-going vessel)의 발명, 사유재산제를 전제로 한 주식회사 제도의 발명과 확대, 과학·기술의 발견과 진보, 프로젝트 투자 방식의 창안과 확대는 새로운 금융 방식, 금융 혁신을 불러일으켰고, 역으로 (ii) 이러한 금융 혁신을 통해 경제 생산력, 국제무역, 과학·기술 연구, 보다 다양한 프로젝트의 실행이 더욱더 확장되고 고도화되었습니다. 이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수백 년간 경제가 급성장하고 사회가 변동되어 왔습니다.
과연 이 거대한 흐름과 변동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과 바탕은 무엇일까요?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전제로 준비된 답은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금융의 관점에서 답하기 위해서는 더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국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이 현상의 배후를 묻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듯합니다.
이로움(利)을 원하는 혜왕과 의로움(義)을 권하는 맹자
중국 전국시대는 200년간 사활을 건 전쟁과 극심한 사회변동이 지속된 시대였습니다. 청동기 문명에서 철기로 이행하며 제작된 철제 농기구는 농업생산력을 크게 높였고, 철제 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치열한 전란 속 일곱 개의 나라(전국칠웅)로 재편되는데, 그중 하나가 위(魏)입니다. 위의 3대 군주 혜왕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 혜왕 앞에 맹자가 나타났고, 혜왕은 맹자에게 묻습니다. "영감님께서 천 리를 멀다고 하지 않고 오시니, 장차 이로써 내 나라가 이(利)로울까요?" 맹자의 답은 단호합니다. "왕이시어,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극적인 장면, 의미심장한 대화로 널리 회자되는 옛이야기입니다. 맹자의 말을 듣는 혜왕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전국시대 철제 사용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증대로 상업과 금융이 크게 촉진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용된 다양한 청동 화폐들을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둥근 모양 외에도 칼 모양(명도전), 농기구 모양(포전) 등의 화폐가 유통되어 우리 고조선 지역에서도 출토가 됩니다. 경제적 풍요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동반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그 와중에 제자백가가 나타나 풍요로운 사상의 꽃을 피웠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이어지는 맹자의 논리는 '왕부터 서민까지 내 나라, 내 집, 내 몸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엇갈리면 결국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못을 박듯, '전차가 만 대 있는 나라에서 왕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전차 천 대 있는 가문이고, 천 대 있는 국가에서 왕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 대 있는 가문'이라고 예시합니다. 사활을 건 경쟁 속 이(利)를 구하는 왕의 심정을 알아챘을 것이나, '위로부터 아래까지 각자의 이익만 취하다 자칫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 추구와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
시대, 지역, 환경이 바뀌어 맥락이 크게 달라지긴 했지만, 경제학의 비조 애덤 스미스는 맹자와 전혀 다른 분석을 내놓습니다. 개인의 이익 추구 성향이 공공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즉, '개인은 공공이익의 증진을 가져올 의도가 없고, 얼마나 증진하는지 알지도 못하나,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산활동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이루게 된다'는 취지입니다.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는 보이지 않는 손(자유 경쟁을 통한 시장의 자율적 조정 능력)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체제가 작용하며 경제성장과 사회변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도 플랫폼,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 토큰화 등의 첨단 기술을 반영한 산업전환과 사회변동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화두입니다. 그 이면에서는 천문학적인 금융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중심에 이익 추구의 욕망(이기심)이 자리합니다.
자본주의의 도덕, 금융의 도덕 - 공리주의
이러한 이익 추구의 체제에서 어떤 도덕관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시장경제 체제의 도덕은 공리주의와 상통합니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내세운 도덕 이론으로, 쾌락(행복)에 관해 인간이 동일한 기준을 공유한다 가정해, 양적으로 이를 측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상품의 가치가 가격이라는 척도를 통해 측정, 정량화되는 것에 상응합니다. 공리주의가 정부 정책에 반영될 경우 구성원 전체의 총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리주의(도덕 이론)에 의할 때, 금융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금융투자는 생산활동을 촉진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사회의 총효용을 증대시키는 데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전체의 이익을 강조한 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증시"라며 주식시장 부양 의지를 표명한 이재명 정부의 정책 근저에 있는 철학도 아마 이와 상통할 것으로 보입니다.
애덤 스미스와 맹자의 만남-이와 의의 균형
그런데 맹자가 오직 인의(仁義)만을 강조한 것만은 아닙니다. '서민에게 꾸준한 생업이 없이는 꾸준한 마음도 없다'(則無恒產 因無恒心)며 생업(利)이 있어야 인의(仁義)를 지킬 도덕심이 생긴다는 점도 역설했습니다. 한편, 애덤 스미스도 이기심이 도덕의 한계 내에서 발휘될 때 '개인의 이익 추구 성향이 공공이익을 가져온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즉, 최소한 이들에게는 동서(東西)고금(古今)을 넘어 이로움과 의로움의 추구가 배타적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금융시장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극단적인 이익 추구의 행태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도덕이 설 자리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대응해 금융시장에서의 의로움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금융소비자보호법상의 적합성·적정성의 원칙 및 설명의무 등입니다. 금융기관은 금융소비자의 재산, 성향 등을 잘 파악해 적정한 상품을 권유해야 하며, 금융의 위험 요소와 손익구조 등 중요사항을 제대로 설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금융규제 규범은 정보와 금융 문해력의 비대칭 상황에서 상대를 배려하도록 하고, 중요한 사항을 정직하게 설명할 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도덕의 기반이 되는 '역지사지'와 '정직'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동안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이로움을 강조했던 이재명 정부는 과연 어떤 의로움을 바탕에 두고 있고, 어떻게 이를 펼쳐 보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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